6) 문학 공간

44) 눈이 부시게 슬픈 날.

산 그림자 2013. 1. 25. 11:18

 

 

 

 

    연초에 영하 10도 훨씬 아래로 수은주를 대차게 끌어내린 초절정의 강추위가 계속되고서야

    비로서 내겐 그 춥고 긴.

    그렇긴 해도 정겹기만 한 어린 시절의 엄동설한이 생각났다..

    외갓집 사랑채에서 잠결에 들었던 문풍지 떠는 소리.

    메밀떠억- 찹싸알떠억-

    꿈속인지조차 가름되지 않게 멀리서 들려오던 어느 고학생 떡장수의 애수어린 단조의 공허한 외침.

    창백한 눈썹 달 아래 침침한 골목을 구슬피도 파고들던 맹인 안마사의 가녀린 피리 소리.

    그러다가 낮게, 아주 낮게 겨울의 까만 밤 아래로 근엄하게 내려앉던 자정의 통금 사이렌 소리...

 

    그 겨울밤엔 이런 소리만 들린게 아니다.

    뜨끈뜨끈한 안방 아랫목을 차지한 두툼한 이부자리에서는 빳밧하게 쑨 밀가루 풀을 정성들여 매겨

    가슬가슬하다 못해 깔깔했던 솜이불 하얀 홑청이 몸부림에 부서지며 내는 파삭거림까지 더했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 긴긴 겨울밤은 추위 보다도 오히려 이런 낯익은 소리 덕분에

    더욱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간 세월은 무심히 흘러 나도 이젠 60대 초반.

    당시 사십고개 중반이셨던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장년이 아닌 장년이 됐다.

    동네 중앙에 뻣딩기며 서있던 검디검은 넓은 기와집. 

    마당에는 해마다 잡초가 나고 쓰러지고 우거지기를 수 십년.

    송아지같이 뜀박질하던 보면 좁고 좁던 골목길.

    넓은 강 이지만 호수같이 잔잔하던 동네앞 금호강은 계절이 없는 놀이터였다.

    물고기 잡고, 멱 감고 헤엄치고 얼음지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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