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름다운한국

15) 조계산 굴목이재.

산 그림자 2011. 8. 18. 14:37

 








조계산 굴목이재는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고개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이고, 송광사는 조계종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로 사세를 단단히 떨치고 있다. 두 절을 이으며 조계산의 8부 능선을 넘어가는 이 고개는 또 활엽수림이 선사하는 녹음을 만끽할 수 있다.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풀어 놓은 짙은 숲 그늘이 선암사부터 산길을 매조지하는 송광사까지 이어졌다.

 

 

왕벚나무와 편백나무, 그리고 활엽수의 깊은 그늘


기실, 선암사로 들 때부터 조계산의 숲 그늘을 실감하고 만다. 매표소에서 선암사에 이르는 길은 한여름에도 더위를 모를 만큼 울창하다. 그 우거진 숲길을 따라가면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계곡 위에 걸려 있다. 계곡은 시원한 물소리를 토하며 바위와 이끼를 핥으며 흘러간다. 한여름에도 더위가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그 녹음 짙은 길의 종착점은 선암사가 아니다. 20리쯤 되는 산길을 따라 조계산을 훌쩍 넘어 송광사까지 이어진다.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로 향하는 길에는 왕벚나무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이 고목이 피워내는 벚꽃은 오월 중순에 흩날린다. 연둣빛이 넘실거리는 숲에서 함박눈처럼 날리는 벚꽃은 운치가 있다. 널찍한 산길은 떨어진 꽃으로 온통 하얗게 도배된다. 그곳에서 다리를 건너 두어 걸음이면 굴목이재를 향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마에 땀이 영글기도 전에 발길을 멈추고 만다. 활엽수의 바다라는 조계산에 보석처럼 박힌 편백나무 군락이 ‘게 섯거라’ 외치기 때문. 선암사의 편백나무는 수령 60~70년 된 것들이다. 한 아름씩 되는 녀석들이 곧장 수직으로 솟구친 모습이 장관이다. 그 깊은 편백나무 숲에는 오월이면 노랑꽃을 틔운 피나물이 불길처럼 번진다. 어둑어둑한 숲이 녀석들로 인해 등불을 밝힌 것처럼 환하다. 또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골물 소리가 푸른 비처럼 떨어진다. 어찌 발길을 쉽게 옮길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사람들은 편백나무 숲에 마련해 놓은 벤치에 앉아 한참씩 쉬었다 가게 된다.

 

   선암사 경내에 있는 연산홍의 붉은 꽃이 땅에 떨어져 ‘꽃바다’가 됐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뀔 때면 선암사는 이렇게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승주처녀 꽃가마 타고 낙안읍성으로 시집가던 고개

편백나무 군락을 지나면 등산로는 제법 산길다워진다. 숱한 등산객들의 발길을 받아내 헐벗은 산길은 툭툭 불거진 바위들과 꿈틀꿈틀 뻗어나간 나무뿌리가 덮고 있다. 이 길을 따라 선암사와 송광사, 두 절의 스님들이 오가며 우정을 나눴다. 이 길을 따라 승주의 처녀는 꽃가마를 타고 낙안읍성으로 시집을 갔다. 어디 그뿐이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도 이곳 조계산이다. 소설 속에는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눴던 해방 전후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이 산을 무대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숯가마 터를 지나면서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저만치 멀어진다. 고갯마루가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이곳부터 돌계단이 시작된다. 고깔을 오르는 것처럼 가파른 길이다.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발길을 내딛은 사람들은 아차 싶은 곳이다. 그러나 힘들어만 할 일도 아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숨이 차면 잠시 고단한 발길을 멈춘다. 뒤를 돌아보면 눈높이와 맞춤해 펼쳐진 초록바다가 타는 속을 씻어준다.

 

선암굴목이재에 오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이제 코가 땅에 닿을 듯이 가파른 오르막은 없다. 사실 굴목이재는 두 개다. 선암사에서 오르는 길의 고갯마루는 선암굴목이재라 부르고,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고갯마루는 송광굴목이재로 부른다. 선암굴목이재부터 송광굴목이재로 가는 길은 큰 힘 들이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적당한 오르막이라 걱정을 놓아도 된다. 힘이 남아도는 건각들은 이곳에서 배바위를 거쳐 조계산 정상을 밟는다.

 

   선암사에서 선암굴목이재를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왕벚나무가 떨군 벚꽃이 길에 가득하다.
   가는 봄이 마지막으로 베푸는 꽃길이다.

  

나그네 붙잡는 주막집 보리밥과 동동주


선암굴목이재에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계곡에 걸친 나무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면 사람들이 주막집이라 부르는 보리밥집이 있다. 30년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이 집의 보리밥은 이미 정평이 났다. 굴목이재를 넘겠다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는 이 집의 보리밥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계곡 가의 키 낮은 주막집. 몇 아름이 넘는 느티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앉아 골바람 쐬어 가며 동동주 한 잔 걸치는 기분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보리밥은 또 얼마나 단지 모른다. 짙은 녹음 속을 걸으며 땀을 흠뻑 흘린 탓도 있겠지만 전라도의 푸짐한 인심이 담긴 보리밥은 꿀맛이다. 상추와 돌나물, 참나물, 버섯 등의 산채는 이 집에서 직접 기르거나 조계산에서 딴 것들이다. 이 산나물을 듬뿍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 한 방울 살짝 쳐서 썩썩 비비면 밥 한 사발이 게 눈 감추듯 비워진다. 그렇게 배를 불리고 나면 산행은 그만 접고 평상에 누워 한숨 낮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아진다.

 

그러나 길은 남았다. 행복한 점심은 추억으로 돌리고 게으른 발걸음을 송광굴목이재로 옮겨야 한다. 송광굴목이재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다. 그러나 대부분 발이 굼뜨다. 짐작이 가겠지만 주막집에서 동동주와 보리밥으로 한껏 배를 불려 놨기 때문이다.

 

송광굴목이재부터 송광사까지는 줄곧 내리막으로 조금 지루하다. 선암사에서 오르는 길처럼 시원한 풍경이 아니다. 그래도 하산길이다. 쉬엄쉬엄 40분쯤 내려가면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마중을 나온다. 계곡에 걸린 다리 세 개를 지나면 송광사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로 불리는 절이다. 굴목이재를 넘어온 고단한 여정은 계곡에 걸친 우화각에 기대어 다리쉼을 하는 것으로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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