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무량사.
부여 무량사는 고향처럼 아늑하고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다.
절집은 천왕문 사각형 테두리안에 가득차 있다.
액자틀에 들어있는 가족사진처럼 석등과 오층석탑,극락전이 남북 일직선상 한줄로 서 있다.
여름엔 오른쪽 늙은 느티나무와 소나무 가지가 극락전 현판 글씨를 깻잎머리처럼 살짝 가린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에야 극락전 오층석탑, 석등의 단아한 모습을 오붓하게 볼수있다.
동승(석등)과 주지스님(오층석탑), 그리고 곱게늙은 조실 스님(극락전)이
공손하게 합장하고 있는것 같다.
삼대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듯 하기도 하다.
눈 쌓인 달밤. 푸른기 감도는 무량사는 황홀하다.
둥근 보름달이 만수산(575m) 잔등위를 지나 극락전 어깨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평평한 절집 마당에 쏟아지는 눈부신 달빛 부스러기.
셀수없는 무량의 도를 닦는곳.
극락전은 외관은 2층 이지만 안쪽은 위아래가 천정까지 확 트여있는 통층이다.
인자한 장자풍의 절집. 넉넉하면서도 덕스럽다.
" 기진게 없으니 글씨로나마 시주하겠다" 고 써줬다는 極樂殿(극락전) 편액은
생육신의 한분이신 김시습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부도밭엔 五歲金時習之墓(5세김시습지묘)라고 쓰인 묘비의 부도가 있다.
김시습이 다섯 살 때 세종 앞에서 그 재주를 뽐낸 데서 유래했다.
극락전 뒤편의 산신각이 김시습이 머물던 토굴이 있던 자리다.
산신각옆 淸閒堂(청한당) 편액의 閑(한)자는 글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극락전 옆 영정각엔 보물 제1497호. 인 김시습의 초상화가 있다.
동아일보